현역 시절 외다리 타법으로 공을 기다리는 왕정치

일본 야구 팬들 사이에는 '기로쿠노 오, 기오쿠노 나가시마(記録記憶長嶋)'란 표현이 회자된다. 통산 868개의 홈런,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홈런 신기록(55개)을 올린 오 사다하루(王貞治-이하 왕정치)와 '미스터 베이스볼'로 불리며 일본인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에 대한 평가다. 대다수 일본 야구팬의 아련한 추억에는 나가시마의 인기와 존재감이 훨씬 강렬하게 부각돼 있지만 실력만큼은 왕정치 출중하다는 의미가 이 말에 녹아들어 있다.

 

왕정치는 대만 국적(대만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이란 핸디캡과 보이지 않는 텃세를 극복하며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 사실상 일본인이나 다름없는 대접을 받는다. 1979년 외국 국적을 가진 그가 최초로 일본 정부로부터 국민영예상을 받은 사실은 그러한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다. '세계의 왕'(世界王-그가 868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세계 최고의 홈런타자에 등극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이란 별명 역시 왕정치에게 보내는 일본인들의 찬사다.

 

그가 배타적이기로 이름난 일본 야구계에서 긴 생명력을 가지고 오랫동안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실력뿐 아니라 선수로서 성실한 자세와 겸손함 덕택이다. 본인 스스로 '나는 라면집 아들'이라고 스스럼없이 말하고 자신을 한껏 낮추는 등 서민적 이미지를 보임으로써 팬들에게 보다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최고명문팀인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감독을 지냈고 현재는 소프트뱅크 구단 대표를 맡고 있다.

 

1959년 요미우리에 입단, 22시즌간 뛰며 그가 남긴 성적은 가히 전무후무하다고 할 수 있다. 통산 868개 홈런을 때린 그는 1964년 한시즌 최다 55개의 홈런을 날렸다. 이승엽이 2003년 시즌 56개를 터뜨리며 왕정치의 기록을 깨기 전까지 아시아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데뷔한 해인 1959년 7개를 친 이후로 은퇴할 때까지 무려 21시즌 연속 두자릿수 홈런을 기록한 것도 왕정치 뿐이다. 홈런왕 타이틀을 차지한 것만 15차례다. 홈런 뿐 아니다. 타점(2170타점), 출루율(0.446), 장타율(0.634), 득점(1967점)은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일본프로야구에서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한시즌 최다 홈런 기록에 대해서는 논란이 적지 않다. 왕정치의 기록에 도전한 타자들(모두 외국인 선수다)에 대해 투수들이 정면 승부하지 않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85년 랜디 바스(한신 타이거스), 2001년 터피 로즈(긴테쓰 버펄로스), 2002년 알렉스 카브레라(세이부 라이온스) 등이 왕정치의 기록을 깨기 위해 도전했지만 각각 54개(바스), 55개(로즈, 카브레라)에 그쳐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당시 기록 유지를 위해 왕정치가 감독으로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았느냐는 '고의사구 지시 의혹'은 지금도 논란이 진행중이다.

 

 

왕정치가 1973년 9월3일 요미우리 홈경기장인 도쿄 고라쿠엔구장에서 열린 야쿠르트 스왈로스전 3회말 당시 세계 최고기록이던 통산 756호 홈런을 때린 후 두 손을 번쩍 들고 1루를 향하고 있다.

1985년 압도적인 타력으로 21년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을 확정지은 한신. 간판타자 랜디 바스는 이 해에 홈런, 타격, 타점 3관왕 타이틀을 손에 넣었다. 팬들의 관심은 그 때까지 54개의 홈런을 때린 바스의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 경신 여부에 쏠렸다. 시즌 막판 한신은 숙적 요미우리와 2연전을 남겨놓고 있었다. 요미우리의 마운드를 지킨 것은 에이스 에가와 스구루(江川卓)였다. 에가와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바스는 에가와와의 승부에서 3타석에 들어와 2타수 1안타, 볼넷 하나를 기록했다. 5점을 실점한 에가와가 마운드를 내려가고 이어 들어온 하시모토 게이지는 4번째 타석 때 바스를 고의 볼넷으로 내보냈다. 이어 벌어진 2번째 경기에서는 3타석 모두 고의 사구였다. 결국 바스는 기록 경신에 실패했다.

 

당시 언론들은 고의사구에 대해 그다지 크게 다루지 않았다. 곧바로 일본시리즈가 이어졌기 때문에 당시 승부보다는 일본시리즈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경기를 지켜본 대다수 야구팬들은 왕감독이 뭔가 압력을 행사했을 것이라고 믿었다.

 

요미우리 구단의 이면을 다룬 책 <거인군 터부 사건사>(다카라지마샤, 2006년)를 보면 당시 요미우리 담당기자의 말을 통해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압력이요? 담당기자라면 알고 있겠죠." 에가와(당시 선발투수)는 오프더레코드를 전제로 이같이 말했다 하지만 왕 감독이 직접 지시했는지에 대해서는 부인했다. 호리우치(투수코치)와 요시다(배터리코치)는 노코멘트였다.

그러나 훗날 요미우리에서 방출된 한 외국인 선수는 '당시 자이언츠의 투수진은 바스에게 스트라이크를 던지면 공 1개 당 1000달러의 벌금을 물린다는 말을 코치로부터 전달받았다'고 증언했다. 또 다른 외국인 선수는 '왕 감독이 바스를 시기했던 것이 틀림없었다'는 상황증거를 담당기자에게 밝혔다. 하지만 이런 상황들은 모두 요미우리의 '1급 비밀'이었다.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감독 시절 왕정치(왼쪽)와 당시 요미우리 감독이던 나가시마 시게오. 두 사람은 이른바 ON타선을 구축하며 1960~70년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전성기를 이끌었다.

16년의 세월이 흐른 뒤에도 또다시 의혹은 불거져 나온다. 2001년 나온 이른바 '로즈 고의사구 사건'이다. 긴테쓰 버펄로스의 터피 로즈는 당시 55개의 홈런을 때려 왕정치의 시즌 최다 홈런 기록과 타이를 이룬다. 남은 경기는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와의 3연전이었다. 공교롭게도 다이에를 이끌고 있던 사령탑이 왕정치였다. 1번타자로 나선 로즈는 전 타석 고의사구. 경기 후 취재진이 몰려들어 '왕 감독이 고의사구를 지시했느냐'는 질문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코치는 발끈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감독은 기록으로 남은 사람이다. 그것을 지켜줘야 한다. 우리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감독은 '승부하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감독과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듬해 세이부의 알렉스 카브레라의 경우에도 비슷한 소동이 일어났다. 2002년 10월5일 이 때도 세이부와 격돌한 것은 다이에. 세이부의투수진은 56호 홈런 달성여부가 걸린 경기에서 정면승부를 피했다..

 

왕정치의 시즌 55호 홈런을 빗대 '55호 체제'라고 꼬집는 표현이 있다. 일본의 전후 정치체제를 가리키는 '55년 체제'를 패러디한 것이다. 55년 체제는 40여년이 지난 2009년 붕괴했지만 '55호 체제'는 아직까지 '불가침'의 성역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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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