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엔 야구대회에서 힘차게 공을 던지고 있는 마쓰자카

마쓰자카 다이스케(松坂大輔)는 일본 야구사의 한 획을 그은 투수로 평가받는다. '헤이세이(平成)의 괴물'이란 별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의 철완이 뿜어내는 강속구는 무시무시했다. 불같은 강속구로 타자를 굴복시키는 위압감과 다채롭고 섬세한 변화구, 바이오메카니즘 원리에 따른 화려한 투구폼, 그리고 어떤 타자와 맞서도 밀리지 않는 배짱과 여유는 보통 투수와는 다른 특별한 것이 있었다. 그와 비견할 투수는 100년이 넘는 일본 야구 역사상 손에 꼽을 정도에 불과하다는 게 일본 야구평론가들의 공통된 평가다.

 

■ 한 경기 250개 '괴력의 투구'

 

마쓰자카의 이름을 선열하게 각인시킨 무대는 1998년 여름에 열린 제80회 전국고교야구선수권 대회였다. 특히 대회 8강전이었던 요코하마고-PL학원고의 경기는 일본 고교야구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로 기록되고 있다.

 

1980년 8월20일 오전 8시30분 고시엔구장에서 첫 경기로 열린 양교의 격돌은 이른 아침에도 불구하고 무려 4만3000명의 관중이 몰려들었다. 경기는 일진일퇴의 양상으로 전개됐다. PL학원이 먼저 점수를 뽑으면 요코하마고가 쫓아가는 형국이 되풀이됐다.

 

2회말 희생플라이와 2루타, 적시타 등을 묶어 PL학원이 3점을 선취하자 4회초 요코하마고는 포수 고야마 요시오(小山良男)의 2점 홈런으로 반격했다.

그러나 이어진 4회말 공격에서 PL학원은 다시 1점을 달아났다. 요코하마고는 다시 5회초 마쓰모토 쓰토무(松本勉)의 2타점 2루타로 4-4 동점을 만들었다. 7회말과 8회초에 각각 1점씩 주고받은 경기는 9회말 5-5 상황에서 연장으로 넘어갔다. 선발투수로 등판한 마쓰자카의 투구수는 이미 139개를 찍고 있었다.

 

11회초 요코하마고가 1점을 앞서가자 11회말 PL학원이 쫓아왔고, 16회에도 양팀은 각각 1점씩 뽑아내 숨막히는 승부를 이어갔다. 희비가 갈린 것은 17회였다. 2사후 투수의 악송구를 틈타 출루한 주자를 1루에 놓고 도키와 료타(常盤良太)가 상대팀 에이스 가미시케 사토시(上重聰)의 초구를 강타, 우측 스탠드를 꽂는 2점 홈런을 터뜨렸다. 당시 덕아웃 앞에서 연습투구를 하던 마쓰자카는 환희의 만세를 불렀고 이 장면은 고스란히 TV 화면을 통해 일본 전역에 전해졌다.(지금도 유명한 장면으로 남아있다.)

 

17회말 PL학원의 공격이 남아 있었지만 더이상 쫓아갈 힘이 없었다. 3자 범퇴. 마지막 51번째 아웃을 삼진으로 잡아낸 마쓰자카의 투구수는 딱 250개였다. 3시간37분에 걸친 혈투가 끝났을 때 시계는 12시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기종료 후 패배한 PL학원측 덕아웃에는 허탈한 웃음이 흘러나왔다. 반면 요코하마고 선수들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돼 있었다. 

 

마쓰자카의 드라마는 그러나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튿날 벌어진 4강전에서도 요코하마고는 다시한번 명승부를 펼친다. 4강전 상대는 메이토쿠기주쿠(明德義塾). 요코하마고는 전날 250구를 뿌린 마쓰자카 대신 2년생 투수 2명을 잇따라 내보냈지만 메이토쿠 강타선에 압도당하며 8회초까지 0-6으로 끌려갔다. 누가봐도 요코하마고의 패색이 짙은 상황이었다. 실제 요코하마고의 와타나베 모토노리(渡邊元智) 감독은 그라운드의 나인을 불러놓고 "남은 2이닝동안 경기를 뒤집기는 어렵다. 이제부터는 실컷 고시엔을 즐겨라"라고 말했다.

 

그 때부터 기적이 일어났다. 요코하마고는 8회말 메이토쿠의 선발 데라모토 시로(寺本四郞), 구원투수 다카하시 가즈마사(高橋一正) 로부터 4점을 만회하고 반격을 시작했다. 그리고 마지막 9회초. 아무도 예상치 못한 선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바로 마쓰자카였다. 본인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내일은 던질 수 없을 것"이라고 공언한 터였지만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에이스로서 나서 9회를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탄력을 받은 요코하마고의 타선은 9회말 마지막 공격에서 마침내 터지기 시작했다. 고토 다케토시(後藤武敏)의 2타점 적시타에 이어, 2사 만루에서 시바 다케시(紫武志)의 끝내기 안타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6점차의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경기를 내준 메이토쿠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엎드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마쓰자카가 1998년 8월 80회 일본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고시엔대회) 결승전에서 마지막 타자를 삼진으로 잡아낸 뒤 환호하고 있다.

교토세이쇼(京都成章)와의 결승전은 마쓰자카가 왜 위대한 선수인지를 보여준 한판이었다. 마쓰자카는 초반부터 차곡차곡 3자 범퇴행진을 벌이며 교토세이쇼의 타선을 무력화시키더니 결국 노히트노런(무안타무실점)으로 대미를 장식했다. 요코하마의 3-0 승리. 고시엔 결승전 노히트노런은 1939년 가이소중(海草中-현재 고요<向陽>고교:와카야마현 소재)의 시마 세이이치(嶋淸一)가 달성한 이후 59년만의 일로 사상 두번째였다. 요코하마고 역시 사상 5번째로 봄철 여름철 고교야구선수권을 제패하는 야구 명문고로 이름을 올렸다.

 

 

 

■ "일본 고교야구를 평정하고 싶다"

 

고교 졸업 후 마쓰자카는 3개 구단(닛폰햄 파이터스, 요코하마 베이스타스, 세이부 라이온스)의 경합 끝에 세이부의 지명을 받아 1999년 프로에 데뷔했다. 첫해 16승5패, 방어율 2.60의 발군의 성적을 거두며 신인왕을 따냈고, 이어 3년 연속 퍼시픽리그 최다승 투수에 올랐다. 2001년에는 일본 최고투수에게 주는 사와무라상을 수상했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108승60패를 올린 그는 2007년 화려하게 메이저리그 무대에 진출해 지난해까지 보스턴에서 6시즌을 뛰며 50승37패의 성적을 기록했다.

 

일본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 시절의 마쓰자카.

사실 마쓰자카가 주목을 받은 것은 중학리그 때부터였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야구에 입문한 마쓰자카는 중학교 시절 도쿄 에도가와구의 '에도가와미나미(江戶川南) 시니어'에 소속돼 2학년 때는 전국대회 준우승을 이끌었다. 그는 고교 야구계로부터 주목을 받기시작해 30여개 고등학교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당시 에도가와미나미시니어의 감독은 도쿄 데이쿄(帝京)고교와 인연이 깊어, 대다수 사람들이 마쓰자카의 데이쿄 진학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마쓰자카가 선택한 것은 도쿄에 인접한 가나가와현의 요코하마 고교였다.

 

그가 요코하마를 택한 것은 3가지 이유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첫째 중학교 시절 공식전에서 마쓰자카가 3번을 패했는데, 그 중 2패가 고야마 요시오, 도키와 료타, 고이케 마사아키(小池正晃)가 속해있던 '나카모토마이시니어'팀이었다. 이들 세 선수가 요코하마에 진학한다는 사실을 접한 마쓰자카는 "이 친구들과 같이 뛴다면 고시엔 제패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운동환경 때문이었다. 데이쿄는 야구뿐 아니라 축구에서도 전국 굴지의 명문고이다. 때문에 운동장은 야구부와 축구부가 같이 쓰도록 돼 있었다. 반면 요코하마고 야구부는 야간조명시설을 갖추고 좌우 펜스길이 95m의 전용야구장에서 훈련에 전념할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다.

 

마지막 이유는 투수로서 마쓰자카를 필요로했던 학교가 요코하마고교 한 곳 뿐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마쓰자카를 원했던 다른 학교 대부분은 그의 공격센스를 높이 평가해 타자로서 입교를 권유했던 것이다.

 

■마쓰자카 세대

 

마쓰자카의 명성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그와 같은 세대에 출생한 선수들 가운데는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계를 주름잡는 수준급이 즐비하다는 점이다. 그런 선수들 가운데서도 군계일학과 같은 활약을 펼쳤다는 점에서다. 일본에서는 '마쓰자카 세대'라며 이들을 아우르는 표현을 쓴다. 1980년 4월2일~1981년 4월1일 태어난(일본은 각급 학교의 학기가 4월부터 시작하기 때문에 동 세대를 분류할 때 4월을 기준으로 한다) 선수들이다. 

 

그들의 면면을 보면 이렇다. 한신 타이거스의 수호신 후지카와 규지(藤本球兒), 히로시마 카프의 내야수 히가시데 아키히로(東出輝裕),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좌완 에이스 스기우치 도시야(衫內俊哉), 요미우리의 거포 무라타 슈이치(村田修一), 요코하마의 호타 준족 모리모토 히초리(森本稀哲) 등등 이루 손꼽기 힘들 정도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마쓰자카 세대로 자신이 분류되는 데 격한 거부감을 보이기도 한다. 한신의 구보타 도모유키(久保田智之) 같은 선수는 "나이가 같다는 이유로 (우리를 마쓰자카 세대에) 엮지 말라"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하지만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무라타 슈이치는 본인이 마운드에서 내려온 것이 마쓰자카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가 속한 히가시후쿠오카(東福岡) 고교가 98년 봄철 전국고교야구선수권 3회전에서 요코하마와 맞붙어 석점차로 패한 적이 있었다. 경기 후 무라타는 "점수차는 3점이었지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 경기에서 마쓰자카의 피칭을 보고 투수로서 한계를 느껴 야수로 전향했다"고 밝혔다. 현재 무라타는 요코하마의 중심타자를 거쳐 요미우리에서 활약하고 있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일본 대표이기도 하다.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당시 나온 마쓰자카 선수카드.

지난 2월11일 MLB.com을 비롯한 외신들은 일제히 마쓰자카 다이스케(松坂大輔)의 이적 소식을 전했다. 지난해까지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뛰던 마쓰자카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 마이너계약을 맺었다는 뉴스였다. 조건은 1년간 150만달러. 2006년 일본 프로야구 세이부 라이온스에서 메이저리그로 갈 당시 보스턴이 마쓰자카를 데려오기 위해 뿌린 1억311만1111달러(입찰금액+연봉)이었지만 약 70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일본 야구계를 호령했던 마쓰자카였지만 그 역시 세월의 무게엔 견딜 수 없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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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