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홍민/특파원





1929년 말 마쓰시타전기제작소(현 파나소닉)의 창고는 재고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일본을 강타한 불황으로 판매가 절반 이상 줄어든 탓이었다. 타개책을 고민하던 창업자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에게 간부들이 찾아왔다. “500여명의 종업원 중 절반을 줄이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마쓰시타 사장은 단칼에 잘랐다. “한 사람도 감원하지 말라. 월급도 전액 지급해라.” 그러면서 그는 “공장을 하루 절반만 돌리고, 대신 사원 모두가 휴일을 반납하고 전력을 다해 재고를 팔라”고 했다. 사장의 결단에 감격한 사원들은 몸을 던져 열심히 뛰었다. 해가 바뀌자 재고는 모두 소진됐다. 공장도 종일 가동하지 않으면 주문량을 맞추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일본의 기업은 ‘사람’을 중시했다. 그것이 기업의 윤리이자 미덕이었다. 종업원들은 강한 주인 의식을 가졌고, 회사는 이들을 ‘가족’처럼 여기고 혜택을 베풀었다. 사장이 현장을 찾아 “당신 덕분에 회사가 잘 나가고 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고 독려하는 풍경은 보통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평등과 공동체 의식을 중시하는 풍토는 회사의 구심력을 높였고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됐다. 


종업원들 사이에서 ‘계급의식’이나 “착취당한다”는 배신감 같은 것은 없었다. 이런 기업문화는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이어져 일본이 세계 제2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한 밑거름이 됐다.


2000년대 들어 이런 분위기는 급변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정권 이후 “일하려는 의욕을 자극하려면 미국처럼 성과주의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신자유주의 논의가 본격화되면서다. “일본이 모두 평등하게 가난해지느냐, 돈을 벌어 부자가 된 이들이 하위층을 끌어올려주느냐 중 하나를 택하라면 후자”(다케나카 헤이조 경제재정상)라는 언급처럼 신자유주의는 고이즈미 정권의 통치 철학이 돼버렸다. 회사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갈라놓은 ‘분단형 인사 개혁’이 가속화되면서 동료들 사이에는 벽이 생겨났다. 양극화 확대와 함께 연봉 2000만엔 이하의 노동자인 이른바 ‘워킹 푸어(Working Poor)’를 양산하는 부작용이 초래됐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인해 실업자가 쏟아졌고, 빈곤과 격차확대는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난 20일 후생노동성이 발표한 일본의 2007년 상대적 빈곤율이 15.7%에 달한다는 소식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 회원국 중 4번째로 높다. 일본보다 높은 나라는 멕시코(18.4%), 터키(17.5%), 미국(17.1%)뿐이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빈곤율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98년 조사(14.6%) 이후 해마다 나빠지는 추세다. 생활고에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고, 중·고생들이 돈이 없어 학업을 포기하고 직업 전선에 뛰어든다. 관공서에는 생활보호수급신청을 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다. 오사카시에서는 지난 8월 생활보호수급가정이 처음으로 10만가구가 넘어섰다고 한다. 고도성장을 거치며 공유했던 ‘풍요로움의 추억’은 더 이상 일본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 같다. 한때 ‘1억 총중류사회’라고 불리던 평등신화는 무너진 지 오래다.

Posted by 조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