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ㅣ조홍민특파원





일본 사회당은 ‘55년 체제’ 이후 자민당과 함께 양당 체제의 한 축을 담당해왔다. 집권 자민당의 우경화를 견제하면서 전후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데 애썼다. 평화헌법 유지와 노동자의 생활 및 복지 향상 등에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와 도이 다카코(土井多賀子) 당수 등 걸출한 정치인도 배출했다. 1996년 당은 해체됐지만 사민당으로 이름을 바꿔 ‘평화헌법을 세계로’로 요약되는 이념을 면면히 잇고 있다. 


그러나 사민당은 2000년대 들어 침체의 길을 걸었다. 친북 성향의 노선에 유권자들이 등을 돌린 게 이유다. 사회당 때부터 사민당은 북한의 일본인 납치 의혹을 부정해왔다. 그런데 2002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방북한 고이즈미 준이치로와의 회담에서 이를 시인했다. 사민당으로서는 북한에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납치문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맹렬한 비판이 잇따랐다. 당의 간판급 의원들이 줄줄이 탈당했다. 도이 당수가 직접 나서 사과했지만 한 번 기운 당세는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03년 10월 중의원 선거에서는 6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전 총선 때보다 의석이 12석이나 줄어든 참패를 당했다. 도이 당수는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현재의 위상도 그때와 별반 차이가 없다. 중의원 480석 중 7석, 참의원 242석 중 5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1야당 자리도 자민당의 아류인 민주당에 내줬다. 


그런 사민당이 오는 30일 총선에서 권토중래를 꿈꾸고 있다. 정권 교체가 현실로 다가오면서 민주당과의 연립을 통해 당을 중흥시키겠다는 의욕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도 사회당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이어서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 


하지만 두 당의 연립이 기대대로 쉽지만은 않을 것 같다. 외교안보 문제에서 두 당의 정책이 부딪치는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론으로 기우는 민주당과 기존의 노선을 지켜야 한다는 사민당 사이의 괴리가 적지 않아 보인다. 최근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가 ‘비핵 3원칙 재검토’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자 사민당은 ‘비핵 3원칙 엄수’를 공언하며 제동을 걸었다. 인도양 해상자위대 급유문제를 둘러싸고도 불협화음을 노출했다. 이념과 현실 사이에 던져진 딜레마가 간단치 않음을 보여준 장면이다. 당의 활로를 찾아야 하는 절박한 입장이지만 지방조직을 중심으로 연립에 대한 저항도 만만치 않다. 반대로 안보 정책과 이념에 매달린 나머지 연립이 좌초되면 당이 더욱 힘을 잃고 아예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2005년 총선에서 후쿠시마 미즈호(福島瑞穗) 사민당 당수는 자민당과 민주당을 “카레라이스냐, 라이스카레냐의 차이”라고 싸잡아 비판하면서 당의 독자성을 부각했다. 그게 먹혔는지 의석이 2석 늘었다. 사민당은 이후에도 후기 고령자 의료제도 폐지 등 민생 정책에 대해 민주당과 공조하는 등 내정에 대해서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헌법 9조 수호’ ‘자위대 해외파병 반대’를 고수하면서 민주당과의 연립을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 사민당의 행보가 주목된다.

Posted by 조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