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 취재를 위해 일본에 출장을 갔다. 기사 마감을 하고 늦은 저녁 잡아탄 택시에서는 프로야구 중계방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월드컵 기간인데 축구보다 야구에 관심이 많네요"라고 운전사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나 그에게서 의외의 답이 돌아왔다. "니폰와 야큐노 쿠니데스(일본은 야구의 나라입니다)". 축구는 젊은 세대나 좋아하지 자기들은 아니라면서. 신문은 물론 방송들까지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온통 축구얘기로 도배를 하고 있었지만 축구는 그에게 딴 나라 얘기였다. 그러면서 운전사는 "축구의 인기가 야구만큼 오르려면 적어도 30년은 더 있어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구는 일본의 국기(國技)다. 스모(일본 전통씨름)나 배구의 인기도 높지만 야구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단순한 스포츠 이상이다. 3월 하순에 시즌을 시작하는 프로야구, 3월과 8월 열리는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는 열도의 시선을 집중시킨다.

 

특히 100년 가까운 전통을 자랑하는 '고시엔(甲子園) 야구대회'는 열도를 감동과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한다. 이 대회는 전국 4200여개 고등학교가 참가해 지역 예선을 거쳐 약 50개 팀이 우승컵을 놓고 경쟁을 벌인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벌어지는 열전 전 경기를 NHK 방송에서 생중계한다.

 

2011년 3월 오사카 교세라돔에서 벌어진 오릭스 버펄로스와 닛폰햄 파이터스의 시범경기. 시범경기임에도 불구하고 이날 구장에는 1만명이 넘는 관중이 들어와 경기를 지켜봤다.

 

 

뿐만 아니다. 매년 2월 시작하는 각 프로야구단의 전지훈련(주로 오키나와나 큐슈 지방에서 한다)에는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몰려온다. 2월1일은 그래서 '야구의 설날(野球元旦)'이라고 부른다. 가을에 열리는 프로야구단 신인 선수 드래프트 추첨은 TV로 생중계할 정도다. 이와 별도로 자국 선수들이 활약하는 메이저리그도 TV를 통해 거의 매일 시청할 수 있다. 비시즌 기간 동안에도 갖가지 시시콜콜한 야구 관련 소식이 각 미디어의 주요 기사리스트에 오른다.

 

야구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는만큼 일본에서 프로야구 선수는 당연히 어린이들이 꿈꾸는 선망의 대상이다.

해마다 조사하는 장래희망 순위에서 프로야구 선수는 항상 다섯손가락 안에 든다. 웬만한 학교나 동네에는 야구장 시설이 들어서 있다. 주말이면 야구유니폼을 차려 입고 훈련장을 찾거나 저녁 때 공터나, 주차장 등지에서 그물을 쳐놓고 티배팅을 하는 어린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일본인들이 야구에 열광하는 것은 개인보다는 팀, 구성원을 중시하는 의식 및 전통적 사고방식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이들이 자주 입에 올리는 '원 포 올, 올 포 원(One for all, all for one)'이란 캐치프레이즈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개인은 모두를 위해 존재하고, 팀 역시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을 돋보이게 해주는 집합체이다. 다시말해 야구가 바로 이런 정신을 가장 잘 구현하는 스포츠가 야구다. 예컨대 고교 대회 후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연결'을 뜻하는 '쓰나가리(がり)란 표현을 자주 쓴다. "내가 살아나가 뒤의 선수에게 연결해줌으로써 팀을 위한다"는 얘기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일본인들이 야구에 더더욱 매력을 느끼는 것 같다.

 

미국의 스포츠저널리스트 로버트 화이팅의 저서 <국화와 배트>에서는 일본 야구의 본질을 이렇게 분석했다.

 

"일본의 야구는 일견 미국 야구와 같아보이지만 실은 완전히 성격이 다르다. 일본인은 단체 사고와 협조성을 중시하고 모든 일에 노력을 요구하며, 연장자를 존경하고 체면을 중시한다. 그들의 이러한 생활관이 이 스포츠(야구)의 구석구석까지 침투해 독특한 성질을 갖게됐다."

 

일본인에게 야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닌 하나의 문화, 아니 그 이상의 것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일본에서 4년간 살면서 야구에 푹 빠졌다. 작렬하는 여름 태양 아래서 벌어지는 고시엔 야구 중계를 지켜봤고, 주말이면 도쿄 인근의 구장들을 돌아다니며 경기를 관람했다. 시즌이 시작되기 전이면 각 구단의 선수 프로필을 모아놓은 선수 명감(名鑑) 사모았다. 각종 야구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일본인들이 보여주는 야구에 대한 열정과 환희, 무엇보다도 6개나 되는 돔구장(도쿄, 오사카, 나고야, 후쿠오카, 도코로자와, 삿포로)에 부러움을 갖기도 했다.

 

이 블로그에서는 그동안 접했던 일본 야구에 관한 정보와 화제, 뒷얘기 등을 풀어놓을 예정이다. 부담없이 가볍게 읽어주시기 바란다. 아울러 잘못된 정보나 오류, 오탈자 등을 발견할 경우 지적해주시면 좋겠다. 미흡한 점이나 비판도 기탄없이 해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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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홍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