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투하고 있는 이나오 가즈히사

지난 4월14일 미 프로야구 LA다저스에서 활약하는 류현진 선수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3타수 3안타를 때려 화제가 됐다. 선발투수로 6이닝 3실점의 호투 속에 타격의 물꼬까지 트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데뷔 2승째. 그야말로 류현진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한 경기였다.

 

1984년 한국프로야구는 최동원 투수(2011년 작고)의 한 해였다. 시즌 27승을 올린 최동원은 롯데가 한국시리즈에서 거둔 4승을 책임지며 소속팀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내셔널리그처럼 투수가 타석에 들어서지 않기 때문에 그의 타격실력을 가늠할 수는 없으나 그해 한국시리즈는 최동원의 원맨쇼로 막을 내렸다.

 

일본에서도 타격과 피칭 실력을 겸비한 선수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일본 야구팬들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박혀 있는 유명한 선수가 있다. 바로 이나오 가즈히사(稲尾和久:1937~2007)란 투수다.

 

이나오는 '철완'이란 별명이 말해주듯 일본 최고의 우완투수의 한 명으로 꼽힌다. 특히 신기에 가까운 제구력은 정평이 나있다. 공 한개, 반개가 아닌 몇개로 쪼갤 수 있는, 묘기에 가까운 컨트롤과 엄청난 연투능력은 가히 '괴물' 수준이다.

 

1956년부터 69년까지 퍼시픽리그 니시테쓰 라이온스(西鉄-세이부 라이온스의 전신) 소속으로만 14시즌을 뛴 그는 61년 78경기에 등판해 42승(14패)을 거뒀다. 이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는 일본 프로야구 한 시즌 최다승 기록이다. 선발로 30차례 나와 25회 완투를 펼쳤고 완봉승만 7번을 했다. 이나오 덕택에 니시테쓰는 일본시리즈 3연패의 금자탑을 쌓으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니시테쓰가 1958년 일본시리즈는 역대 최고의 명승부이자 이나오를 레전드 반열에 올려놓은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니시테쓰는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가 4번타자에 포진한 센트럴리그 우승팀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그해 일본시리즈에서 만났다. 자이언츠는 나가시마 이외에도 후지타 모토시(藤田元司), 호리우치 쓰네오(堀内恒夫) 등 막강 선발진이 버티고 있는 강팀이었다. 니시테쓰는 전반기 한 때 퍼시픽리그 1위와 11경기나 뒤졌으나 올스타전 이후 이나오가 17승1패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올리며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그러나 일본시리즈 직전 이나오가 갑자기 원인불명의 고열에 시달리면서 승부의 추는 요미우리로 기우는 듯했다. 실제 1차전 선발로 나선 이나오는 1회 나가시마에게 우익선상을 흐르는 3루타를 맞으며 선제점을 내줬다. 나가시마는 7회에도 바뀐 투수 가와무라로부터 2점 홈런을 뽑아냈고 요미우리는 9-2 대승을 거뒀다. 2차전도 호리우치의 호투에 밀려 2-7로 패한 니시테쓰는 3차전마저 0-1로 내주며 벼랑 끝에 몰렸다. 이나오는 3차전에서 완투하는 투혼을 보였으나 3회 요미우리의 히로오카 다쓰로(広岡達朗)에게 통한의 3루타 한 방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여기서부터 '만화같은' 반전드라마가 시작됐다. 비 때문에 하루 순연돼 열린 4차전에 또다시 나온 이

1958년 일본시리즈에서 기적의 역전우승을 거둔 뒤 기뻐하는 니시테쓰 선수들. 맨 오른쪽이 이나오 가즈히사.

나오는 6-4 완투승을 거뒀다. 5차전에서는 0-3으로 뒤지던 니시테쓰는 7회 2점, 9회 1점을 만회해 동점을 만든 뒤 연장 10회말 타석에 들어선 이나오가 끝내기 홈런을 때리며 역전극을 연출했다. 이나오는 이 경기에서 3번째로 마운드에 올라와 승리투수가 됐다. 경기 후 구장을 나선 이나오 앞에 한 남성팬이 시멘트 바닥에 무릎을 꿇고 합장하며 "하나님, 부처님, 이나오님(神様、仏様、稲尾様)"이라고 외친 일화는 당시 신문의 제목을 커다랗게 장식했다. 이 제목은 이후 이나오의 대명사가 됐다.

 

이나오는 6, 7차전을 모두 완투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고 니시테쓰는 3연패 후 4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일본시리즈 패권을 거머쥐었다.

 

흥미로운 것은 30여년 뒤 '인연의 대결' 2라운드가 펼쳐졌다는 점이다. 58년 당시 니시테쓰의 주전 2루수였던 오기 아키라(仰木彬)와 요미우리의 에이스 후지타는 1989년 일본시리즈에서 각각 긴테쓰 버펄로스와 요미우리 감독으로 만났다. 결과는 요미우리가 3연패 당한 뒤 4연승으로 일본시리즈를 제패하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 후지타 감독으로서는 선수시절 당한 통한의 역전패를 설욕한 셈이 됐다.

 

현역 통산 276승을 거둔 이나오는 대투수로서 이름을 남겼지만 처음부터 그가 대단했던 것은 아니었다. 1937년 오이타현 벳푸시에서 7남매중 막내로 태어난 이나오는 어부였던 아버지의 뜻에따라 어려서부터 배를 타야했다. 이나오는 당시에 대해 "얇은 나무판 한 장 밑에는 깊이를 알수 없는 바다였다.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를 작은 배에 매일 올라야했지만 그 덕분에 마운드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담력을 얻게됐다"라고 회상했다. 흔들리는 배에서 중심을 지탱하면서 그의 강인한 하체가 길러졌다고도 한다.

 

 

니시테쓰 전성기의 이나오 가즈히사(맨 왼쪽)과 주전 선수들.

고향에 있는 미도리가오카 고교에서 야구를 했던 그는 그 때만해도 일개 무명선수에 불과했다. 고교졸업 후 당시 오사카에 본거지를 둔 난카이 호크스(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 들어갈 예정이었지만 진로를 바꿔 니시테쓰에 입단했다. 나카이와 계약 직전까지 갔지만 "오사카에 가는 것보다도 (니시테쓰의 본거지인) 규슈에서 선수생활을 하는 게 낫다"는 아버지의 조언이 그의 마음을 움직였고, 고교 1년 선배 가와무라 히사후미가 니시테쓰 경영진에게 이나오를 적극 추천하는 바람에 1956년 니시테쓰를 선택했다.

 

그러나 입단 초 이나오는 전혀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니시테쓰 감독인 미하라 오사무(三原脩)는 "(이나오는) 배팅볼 투수를 시키려고 데려왔다"고 공공연히 말할 정도였다. 실제 이나오는 입단 후 처음 맞은 스프링캠프에서 당시 니시테쓰의 주력 타선의 배팅볼투수 역할을 했다. 입이 걸기로 유명한 도요다 야스미쓰(豊田泰光-1953년 신인왕으로 고졸 신인 1년차부터 니시테쓰 주전 유격수를 맡았다)는 그를 '수동식연습기계'라고 불렀다.

 

이나오는 그때 선배들로부터 연습 공 4개를 던지는 가운데 반드시 1개는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을 던지라는 지시를 받았다. 가운데로만 던지면 타격 연습이 제대로 안된다는 이유였다. 이나오는 4개의 공 가운데 한 개는 스트라이크존에서 약간 벗어나는 아슬아슬한 구석에 꽂아넣는 연습을 하면서 제구력을 다듬었다. 나중에는 어찌나 잘 던지던지 캠프가 끝나갈 무렵에는 니시테쓰의 내로라하는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했고 오히려 주전 타자들이 "감독님, 이나오 한번 써보시죠"라고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데뷔 첫해인 56년 21승을 거둬며 신인왕 타이틀을 거머쥔 그는 이듬해 35승을 따낸 이후 1963년까지 8시즌 연속 20승 이상을 올렸다. 특히 데뷔 2년차인 57년에는 시즌 20연승이라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현역시절 최다승리투수 4회, 최우수 방어율 5회, 최다 탈삼진 3회 등 수많은 타이틀을 획득했다.

 

 

2012년 7월1일 '이나오 메모리얼데이'를 맞아 세이부 라이온스(니시테쓰의 후신)의 모든 선수들이 이나오의 등번호인 24번을 달고 나와 경기에 임하고 있다.

이나오는 1969년 은퇴 후 니시테쓰(1970~74), 롯데 오리온스(1984~86)에서 8시즌 동안 감독을 맡았으나 통산 431승 545패 64무(승률 0.442)를 기록했다. 선수 때만큼 화려한 성적은 올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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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조홍민